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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龍)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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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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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17 12:54: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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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찬희 Wrote
용(龍)의 눈물
나는 남성 우월을 주장하거나, 그런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 남자의 눈물에는 와락 마음이 더 많이 약해지는 것은, 알 수 없는 일이다.
특히 건장한 남자의 눈에서, 뚝-하는 소리가 들릴 만큼 큰 눈물방울이 떨어지면
어느새 내 가슴에는 두닥두닥 소낙비 같은 아픔이 내린다.
그래서인지 난 하나 뿐인 아들 녀석의 눈물에는 무지 약한 편이다.
아무리 모질게 마음을 먹어도 녀석의 눈에 글썽, 물기가 고이기 시작하면
어느새 나는 노기의 꼬리를 말아 쥐고 도끼눈을 거둬들이며 연신 녀석의 기색을 살핀다.
‘혹, 내가 그 눈물의 원천이 되지는 않았나?…….’ 반성 아닌 반성까지 해 가며…….
이런 내가 며칠 전 아들 이 다니는 고등학교에 기말 고사 학부모 시험 감독으로 부탁을 받아 갔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초조한 눈빛으로 시험지를 받아들었고
시험지에 빠져들 듯 고개를 박고 있는 아이들 중에는
-몰려드는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 다리를 심하게 떠는 녀석들
한 문제라도 더 외우려고 혼자서 무어라 중얼거리는 녀석들
이때껏 공부한 것을 정리하려는 듯 눈을 감고 도 닦는 자세로 앉아있는 녀석들-
천태만상의 풍경을 작은 교실 안에 펼쳐놓으니, 또 다른 세상의 작은 축소판 같았다.
‘아! 언제쯤 이 같은 아귀 지옥에서 저들이 마음껏 자유로울 수 있을까?’
가슴에 커다란 얼음덩이를 올려놓은 듯, 시린 한기가 아픔으로 밀려왔다.
따르릉, 시작종과 함께 아이들은 빠른 손놀림으로 수학 문제를 바삐 풀기 시작 했고
-물론 개 중에는 아예 시험을 포기하고 멍하니 먼 산을 바라보는 허공 맨도 있었지만-
50분이라는 시간은 시험을 치루는 아이들에게는 늘 매정하고 아쉬운 시간이다.
“이제 오 분 남았다. OMR카드 마킹 다시 확인 하고, 아직 답안지 마킹 안 한사람은 마무리 작업 해라”
감독 선생님의 친절한 안내가 나오자 아이들은 허둥대기 시작했다.
아직 덜 푼 문제 때문에 금세 울상이 될 것 같은 얼굴로 시험지와 답안지를 번갈아 바라보는 아이
아예 포기하고 하나의 번호에 몰표를 던지는 아이
자신의 시계를 원수처럼 쏘아보는 아이…….
각가지 진풍경이 사각사각 연필 구르는 소리뿐이던 교실을 어느새 술렁거리는 저잣거리로 만들었다.
그때 불쑥, 오른 손 하나가 올라왔다.
답안지 작성이 잘못 되었다는 표시로 답지 교환을 알리는 수신호다.
“이 분 남았는데……. 지금 바꿔서 마킹 할 수 있나?”
아이는 거의 주검 같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부터 내 눈은 그 아이를 떠날 수 없었다.
아이는 시험지와 답지를 번갈아 쳐다보면 빠르게 검은 칠을 하고 있는데
따르릉- 아, 아쉬운 이 분이 꼴깍 침 삼키는 소리에 묻혀 지나가버렸다.
“모두 양 손 머리하고, 답지는 책상 오른 쪽에”
“맨 뒷사람 일어나서 답지 걷어 와라”
짧은 시험 시간 보다 더 매정한 선생님의 말에 아이들은 바위보다 더 무거운 한숨과
비명을 번갈아 질러댔다.
아, 어쩌나
바삐 답을 옮겨 적던 그 아이는 몽유병 환자처럼 아예 걷어가는 답안지를 따라 교탁까지 나왔다.
“자리에 앉아”
선생님의 불호령이 떨어지자 나는 아이와 선생님님의 얼굴을 거의 동시에 쳐다보았다.
아이의 커다란 눈에선 이미 넘실넘실 강물 한 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저……. 선생님, 이미 문제를 다 풀고 답지 마킹이 덜 던 저 애는 마킹만 다 하게 해 주죠”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아이와 선생님의 눈을 번갈아 쳐다보며 말을 꺼냈다.
“그럼 형평의 원칙에 어긋납니다.…….”
선생님은 아이들 모두 50분씩 주어진 시간에 답지를 끝내야하므로 안된다고 말을 했지만
그도 나처럼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시험지 들고 이리 나와서 빨리 마킹해”
잠시 주저하던 선생님의 어려운 허락이 떨어졌다.
-8차 교육과정인 고등학교 1학년 내신 성적은 대학 입시에 큰 영향을 미치므로 학교나 선생님은 공정하지 않으면 훗날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 시험에 관련된 것은 아주 예민하다-
아이는 시험지를 들고 나오면서 내게 또다시 모기만한 소리로 무어라 중얼거렸다.
난, 처음에는 감사의 인사인 줄 알았는데 그는 교탁 앞에 서서 촉박한 시간에 주저주저 하고 있었다.
“왜……. 빨리 마킹해”
내가 더 속이 타서 재촉하자, 녀석은 이미 마킹한 부분도 서두르다가
다시 밀려 쓴 것 같다고 아예 카드를 다시 교환해 달라고 했다.
“않되 그냥 답안지 이리 내”
선생님은 큰 맘 먹고 자비를 베풀었는데, 녀석이 너무 무리한 것을 요구했다.
‘휴우! 어쩌지…….’
나도 모르게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얘야, 그냥 앞부분은 두고 나머지라도 빨리 마킹해”
나는 답지를 빼앗으려는 선생님을 재빨리 가로 막으며 아이에게 눈짓을 했다.
일 분……. 참으로 긴 일 분이 지나갔다.
아이는 혼이 빠져 답지를 내고는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엉-엉-.
그것은 사람의 울음이 아니라, 상처 입은 산짐승의 표호처럼 가슴을 파고들었다.
아! 이렇게 전쟁처럼 수학 시험은 끝났지만, 아이들은 아직도 수많은 시험의 전쟁을 치러야 하리라.
그들의 앞날에 놓인 시험의 전쟁은 또 그들의 눈에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게 할까?
복잡해진 마음을 애써 누르며 교실을 나서는데
낯익은 아이가 선생님을 쫒아가며 눈물 반 콧물 반, 범벅이 되어 애원을 하고 있었다.
OMR카드를 밀려 써서 다시 마킹 하게 해 달라고 울며불며 사정하는 그 모습에서
나는 용(龍)의 눈물을 보았다.
그는 아들놈과 함께 우리 집에 자주 놀러오던 어릴 적부터 잘 알고 지내던 아들의 절친한 친구였다
산(山)만한 덩치에 웬만한 상처에도 울지 않을 것 같은 기골 장대한 녀석의 눈물은
내 몸 속에 피를 거꾸로 흐르게 했다.
얼마나 아프고 얼마나 다급하면, 저리 굵고 염도 높은 눈물을 뚝뚝 흘릴까?
우리나라는 청소년 사망의 원인, 2위가 바로 자살이라고 한다.
그날 내가 바로 그들의 시험 현장에서 본 그 장면이 바로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무겁고 무서운 흉기는 아닌지…….
어린 시절, 용이 눈물을 흘리면 큰 비가 오시던지 재앙이 일어난다는 말을 들었다.
요즘 비가 자주 오락가락 뿌리는 것도-물론 장마철이긴 하지만-
가장 꽃다운 나이, 군대에서 요즘 자주 일어나는 사고도
청소년기에 흘리고 있는 그들의 눈물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고
놓치고 지나가 버린 그 결과가 아닐까?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지기 위해, 열심히 공부도 하고 일도 하고 돈도 번다.
그런데 그 행복이 늘 하늘에 걸린 무지개처럼 요원(遼遠)하기만 하다면
이 얼마나 잘못된 교육일까?
그들은 아프다, 아프다 비명을 지르고 울부짖고 있는데
우리는 참아라, 참아라, 더 좋은 날을 위해서 참아라, 고만 한다면
이 얼마나 미련하고 무모한 교육인가?
생일 상 잘 먹으려고, 열흘 굶는다는 우리 속담처럼
이 얼마나 미련하고, 무모한 일인가?
그들은 생일 날 그저 평범한 밥상을 받더라도 그날그날 주어진 그들의 밥상을 거르지 않기를 바라고 있음을 바로 알아야 한다.
그 날 이후 난 자주 아들 녀석의 눈을 살피는 버릇이 새로 생겼다.
선하디. 선한 그 눈에서 또 용의 눈물이 떨어지면 어쩌나…….하는 심정으로.
우린 부모라는 의무와 권리를 너무 남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정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의 마음속에 잠시라도 기웃거려 보면서
그들의 뜨거운 눈물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고 이 글을 쓴다.
물론 용의 눈에 고인 눈물의 의미와, 미래에 찾아 올 그 재앙까지도 함께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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