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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배찬희<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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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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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2.21 14:11: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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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1.
내겐 비밀이 여럿 있다.
어찌 보면……. 그 비밀이 내겐, 꽃을 피우는 바람과 같은 존재인지도.
바람이 너무 심하면 꽃은 상처입고, 마침내 똑- 떨어지고 말지만
그 바람이 적당히 불어주면 스르륵-
주르륵……, 꽃은 탄력을 받아 더 곱고 아름답게 피듯이
비밀…….
너무 많으면 그 무게에 눌려 압사당한 듯 늘 숨차하며 버겁게 살아야 하지만
그 비밀이 후훗-
봄 날 바람에 날리는 꽃향기와 같은 무게쯤 된다면
분명, 우리네 삶의 활력소가 되리라.
이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다리를 건너는 것도
건너다가 두려워 돌아오는 것도
어찌 보면 ,모두가 비밀이라는 이름표를 붙인 관계 아닌지…….
나는 사람들 사이를 대기처럼 자연스레 헤엄치며 살고 있다.
하지만, 자주 그 대기가 주는 부드러운 혜택에도 몸 웅크리고
그 웅크린 몸도 모자라, 상처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때론 내가 준 상처가 무엇인지
또, 내가 받은 상처가 무언지도 모르고
그저 사람들과 나누는 이 은밀한 관계가 좋아서…….
“이건 비밀인데…….” 하고 시작한 관계와 말도 어찌 보면
픽- 웃고 말 아주 사소한 것이 그 대부분이지만
그 사소함까지도 비밀을 나눠 쥔 그 당사자들에게는
지구를 옮길 만큼 대단하게 느껴지는 것이, 또 비밀이 갖는 매력이며 그 힘이다.
어느 날, 잃어버린 지 오래된 가족을 찾는 TV프로를 지켜보던 아들 녀석이
그 큰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는 아이다운 걱정과 질문을 해서 한바탕 유쾌했던 기억이 있다.
“엄마, 나를 잃어버리면 어떤 특징으로 나를 찾을래요?”
대답을 기다릴 잠시의 여유도 없었는지 녀석은 눈썹 위에 난 작은 흉터와
등 뒤의 까만 점을 들이대면서, 내게 은밀한 유대감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는
그제서야 안심이란 듯, 씨익- 웃었다.
‘히- 이쁜 넘’
2.
늦은 장가를 든 내 아버지는 오빠를 낳고 연년생으로 얻은 나를
무척 귀여워 하셨다.
그 덕에 나는 지금도 기고만장까지는 아니지만 공주병이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하지만 여자의 적당한 공주병은 보아주는 사람에 따라 무죄에 가까우리만치 귀여운 구석도 있단다-
아버지는 늦게 얻은 딸이 장차 미스코리아가 되는데 혹시라도 지장이 있을까하여
애면글면 키우면서 누구나 다 치러야 하는 예방 접종 흔적까지도, 걱정이 되어
어께가 아닌, 발바닥을 택하셨다.
나는 자라면서, 사람들의 어께에 드러난 우두 자국들을 볼 때마다
아무런 흔적 없이 깨끗한 내 어께가 처음엔 이상했고
나이 들면서, 아버지의 말도 안 되는 착각에 난 자주 행복했다.
그리고 마음이 특별히 고단하거나, 쓴 약을 먹은 듯 씁쓸할 때면
난 어느새 발바닥을 쳐들고 우두자국을 만지작거리곤 한다.
그 때마다, 나는 알 수 없는 새 힘이 불끈 솟구쳤다.
‘아, 아버지가 나를 이렇게 사랑하셨구나!’
내가 세상에 홀로 버려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닫고
금세 새 힘을 얻어, 씩씩하게 세상 밖으로 다시 걸어 나간다.
이렇게 나는 나이를 먹었고, 우두 자국도 없이 매끈한 내 어께 덕에
어린 시절처럼, 여린 팔뚝은 아니지만 나이 먹어서도 나는 여름이면
습관처럼 민소매 옷을 자주 입었다.
그리고 더 하얗게 드러난 내 어께가 늘 자랑스러웠다.
‘나 이렇게 사랑받았노라고’
흔적 없는 흔적으로 내가 받은 사랑을 과시까지 하면서…….
3.
스무해 전, 우연히 함께한 자리에서 마주한 사람과
그의 턱 밑에 난 작은 흉터를 보면서, 몸에 남아있는 흉터의 사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것이 바로 그 사람과 인연의 첫 단추였나 보다-
“그 흉터는 왜 생겼어요?”
“어릴 때 넘어졌어요.”
그럼, 이 흉터는…….
우린 눈에 띄는 흉터를 찾으며, 함께 추억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참, 한가지…….나는 모든 사람이 다 있는 흉터가 없어요.”
난, 그것이 무어냐고 묻기도 전에 이미 그 정답을 알고 있었다.
“나, 그 답을 알아요, 우두자국 맞죠?”
나는 거의 본능적으로 그 답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나 역시 하얀 어께 위에 선명하게 찍힌 우두 자국이 없는 사람이기에…….
그래서 우린 비밀도 아닌 비밀을
우리의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부모님의 공통된 생각을 나눠가진 관계가 되어
더 많이 친밀해지고, 마주하면 기분 좋아지는 미묘한 동질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 지금은 필연이 되어 우린 자주 서로의 발바닥을 들여다 보곤 함께 행복해 한다
이렇게 작은 것에서부터 동질감이 생기고
관심이 생기고, 비밀이 생기면서 가슴 속에 작은 정원이 만들어지게 된다.
설령 그것이 관심이든, 사랑의 시작이든 상관없이
사람들은 자신과 같다는 동질감에, 이미 자신의 마음 문을 삐그덕 열게 되고
그 열어놓은 문으로 침묵하고 있어도, 이미 천 마디의 말이 오고 간다.
그래서 사람들은 동향(同鄕)을 찾게 되고, 동창을 찾게 되고
같음을 찾아, 더 많은 마음을 주고받게 된다.
오늘도 나는 행복하다.
대중목욕탕에 가서 뽀얗게 드러난 내 어께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와 닮은 발바닥 문신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
비록, 발바닥이지만 그 발바닥에 흐뭇한 미소 피어오르게 하는 비밀의 정원이 있다는 것이
때론 곤고한 내 삶을 짜르르 윤기 흐르는 시간으로 돌아 세우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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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이
2004.12.21 14: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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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나는 행복하다.
비록, 발바닥이지만 그 발바닥에 흐뭇한 미소 피어오르게 하는 비밀의 정원이 있다는 것이
때론 곤고한 내 삶을 짜르르 윤기 흐르는 시간으로 돌아 세우기에……. ////
살면서, 생활의 활력소가 되는 비밀은
인생에 + 쪽 가속도를 붙게 하지요.^^*
킹님, 기온이 뚜욱~떨어졌네요.
오늘은 알콩달콩 곱고 따스한 비밀......
많이 쌓아 보세요.
어떤 비밀이 곱구 따스하냐구....요?
힛~~~비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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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g
2004.12.21 20: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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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비밀이 어디있냐고 하지만
사람은 한두 가지쯤
조그마한것 부터 평생지고가야 할 것 까지
비밀이라는 추억을 갖고 있지요
물론 과거형입니다 미래의 비밀은 없으니..
우두자국..
아름다운 비밀을 유포하셨으니..어쩌지요? ^^
혼자만 아는 비밀로 간직해 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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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토
2004.12.22 01:14:55
![]()
ㅎㅎ
짱이님이 올려주신 배찬희님의 비밀... 재밌게 읽었습니다.
비밀이라고 말하면서 그 비밀을 슬슬...
제가 곧잘 그래요.
ps:목욕탕 가야 하는데~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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