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病)/ 배찬희




어디에도 너는 없었다, 아니
어디에도 너는 지천이었다.


사람들 웅성거리는 차도에서도
인적 끊어진 밤길에서도
너는 맘만 먹으면 완벽한 변신술로
내 앞에 서 있었다.


너를 볼 수 없어 그리운 것은 아니었다.
헉-
숨 막히게 너를 안고도
네가 그리운 것은……
병이었다.


겨울바람보다 더 차갑게 
나를 떠나도
봄바람보다 더 요사스럽게
내 품을 파고들어도, 그래
너를 보내고도
너를 품고도
동질의 무게로
네가 그리운 것은……
병이었다.


어디에도 없는 너
어디에도 지천인 너를 
나는 밤새 잡았다
놓았다 하면서, 때론
태산을 쌓았다가 
때론, 모래성처럼 쉬이 허물어버리는 것
이것은 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오르는 불길처럼 길길이 날뛰며
함께 타오르고 싶은 것, 아니
그 푸른 불꽃에 
더 파랗게 산화되어
눈물조차 푸른 물
뚝뚝, 떨구며
마침내 네가 되고 싶은 것
이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불치병이었다.